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역사/바사 왕조 (문단 편집) ===== 덴마크의 선전포고 ===== 한편 덴마크는 [[크리스티안 4세]](재위 AD 1588년 ~ AD 1648년) 시절 30년 전쟁에 참전하여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맞섰다가 AD 1625년 크게 패배하면서 AD 1629년 뤼베크 조약을 체결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AD 1630년 스웨덴이 30년 전쟁에 참전하자 AD 1634년 이번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편에 섰다가 오히려 스웨덴의 공격을 받고 AD 1645년 8월 제2차 브룀세브로 조약을 체결하며 스웨덴에게 노르웨이의 [[옘틀란드]], 헤리예달렌, 이드레, 세르나와 [[고틀란드]], [[사레마 섬|외셀]]의 영유권을 양도하고 할란드도 30년간 조차해주어야 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 뿐만 아니라 덴마크는 스웨덴에게 외레순 해협의 통행료를 완전히 면제해주어야 했고 덴마크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페르덴 주교령과 브레멘 대주교령의 영유권까지 스웨덴에게 넘겨야 했다. 이렇게 30년 전쟁에서 스웨덴에게 커다란 영토적 손실을 입어야 했던 덴마크는 절치부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AD 1648년 왕위를 이어받은 크리스티안 4세의 차남 [[프레데리크 3세]]는 기회를 엿보던 끝에 스웨덴의 칼 10세 구스타브가 호기롭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했으나 초기의 대성과에도 불구하고 점차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얀 2세 카지미에시와 동맹을 체결하고 스웨덴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하지만 칼 10세 구스타브가 예상과 달리 스웨덴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덴마크를 공격해 오면서 오히려 덴마크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